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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장로직을 은퇴한 한 희남 입니다.

아버님이 70이 되셨을 때 45살이었던 나는 마음 속으로 우리 아버님이 이제 연세가 많아 지셨고 노인이 되셨구나?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내가 나이 70이 되어서 장로직을 은퇴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오늘이 있기까지 보호하시고 인도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최근 수년간 호주에서 생활하고 있어서 본교회를 섬기지 못하였음에도 명예롭게 은퇴하게 하여 주신

김봉균 원로목사님과 장로님들, 모든교우님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또 먼 이국 땅에 있어서 장로은퇴를 행정적 처리로만 생각하였는데 은퇴찬하예배를 함께 드려 주시고

어머님 이학분 권사님이 제 자리를 대신하도록 배려해 주신 이기선 담임 목사님과 

장로님들에게 다시한번 감사를 드립니다.

부곡교회 홈페지에 올라 온 장로은퇴찬하예배 사진을 보면서 가슴이 뭉클함을 느끼며

과거의 많은 생각들이스치고 지나 갔습니다.

영화의 필림과 같이 지나가는 나의 이야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나는 세상에 태어 나기 전 어머님 뱃속에서 사선(3.8선)을 넘어 서울 흑석동에서 태어 났습니다.

태어 난 다음해에 6.25를 겪었고 초등학교를 입학하기 전에 철도청에 다니시는 아버님을 따라

철도관사가 있는 부곡으로 이사를 와서 부곡초등학교를 다녔습니다

어려서부터 나는 희남이라는 내 이름보다 야곱이라는 예명으로 불려졌습니다.

유치부를 다닐때에는 부장선생님이신 아버님의 등에 업혀서 교회를 갈때도 있었고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교회가 평일에도 우리들의 놀이터가 되곤 했습니다.

중.고등부시절에 교회의 새벽종소리는 부곡마을 모든 사람들에게 새벽밥을 짓기 위해

깨워주는 커다란 자명종이었습니다.

서울로 중학교를 통학하면서 신앙생활도 학교공부도 등한시 하였던 나에게 고등학교 입시는

도저히 넘을 수 없는 너무나 큰 벽이었습니다.

당시 담임목사님이신 명화용목사님의 간절한 기도덕분에 무사히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었고

이 일을 통하여 중보기도의 힘과 하나님의 기도응답을 경험하였습니다.

덕분에 고등학교 시절에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면서 고등부회장으로 교회학교교사로 성가대원으로

많은 사역을 감당하였습니다.

교회 뒷마당에 탁구대를 설치하여 탁구도 배우고 모형건반으로 올갠을 연습하여서

공중예배에 반주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교회에서 반주자로 섬긴 덕분에 군입대 후에는 군인교회에서 군종사병으로 근무하는

특혜?를 누렸습니다.

그때 배웠던 탁구실력?으로 이곳 호주에서 탁구동호회를 만들어 지역에 사는 교민들과 함께

운동도하고 친교도 나누고 있습니다.

지난 설날에는 친선탁구대회를 하면서 즐거운사간을 갖었는데 교민신문에

지역뉴스로 보도 되기도 했습니다.

 

지나간 시간들을 돌아보면서 가장 잊을수 없는일은 물가운데에서 불가운데에서 함께 하시고

건져주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내가 73년도 군대를 제대하고 중.고등부교사로 섬기면서 다음해에 중.고등부수련회를

대성리로 갔을 때의 일입니다.

2박3일의 수련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날 아침 지난밤 폭우로 물이 불어난 물가에 나가서 물건을 씻던

고등부학생 임광익군이 급류에 휩쓸리는 사고가 발생하였습니다.

조금만 더 떠 내려가면 한강본류에 합류되는 지점이어서 정말 위급한 상황이었습니다.

현장에 함께있던 나와 김원섭선생(지금미국거주) 두명이 순간적으로 함께 뛰어들었습니다.

급류에 함께 휩쓸리면서 순간이었지만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지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드렸고

기적같이 급류에 휩쓸려 정신을 잃은 학생을 구조하여 세명이 모두 급류를 헤치고 살아나왔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도우심의 손길을 다시 한번 체험하였습니다. 

이 일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는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잊혀진 일이 되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잊지않고

기억해 주시고 그의 선한 손이 내 평생에 함께 해 주셨습니다.

 

10년이 지난후 교회학교부장으로 섬기면서 84년도 봄 야외예배를 철길넘어 새우대(지금휴먼시아아파트단지)

로 갔을 때의 일입니다.

휴지를 소각하다가 불이 잔디밭에 옮겨 붙었는데 삽시간에 넓은 잔디밭에 퍼지는 것입니다.

교회학교 학생들을 대피시키면서 교사들과 같이 불을 진화하는데 너무나도 역부족이었습니다.

불이 숲과 나무에 옮겨 붙으면 마을이 모두 불에 타버리는 앗찔한 상황앞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봄불은 여수(여우)불이라고 사람의 힘으로 끌수 없었는데 하나님의 도우심의 손길로 순간에 역풍이

불어오니까 불은 자연히 소화되었습니다.

불을 끄던 담당전도사가 눈섭이 타버렸지만 얼굴에 화상을 입지 않았고 다른어떤 피해도 없이

화재사고가 끝이 났습니다.

정말 감사 또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후 예명이 야곱인 나는 이사야 43장 말씀이 내게 주시는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되었습니다.

"야곱아 네가 물가운데 지날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다. 네가 불가운데로

지날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물속에서, 불속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은 나의 삶속에 구체적으로 개입하시고

나의 열등감까지 해소해 주셨습니다.

 

첫째; 저는 타고난 음치였습니다.

그러나 올갠을 배워서 부곡교회에서 군인교회에서 반주자로 사역을 감당하게 하셨습니다.

반주를 하면서 음감을 갖게 되어 제대 후에는 성가대원으로 봉사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호주에서 출석하는 새순교회에서 부부가 같이 성가대원으로 사역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둘째; 학력에 대한 열등감입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시작하여 KT에 근무하면서 신입사원들이 우수한 대졸사원으로

채워지는데 과장급인 나는 고졸학력자이었습니다.

그러나 30대 후반에 대학에 갈수있는 길이 열리었고 40대에는 회사에서 주는 장학금으로 대학원(석사과정)을

공부할수 있는 길을 열어주시어 학력에 대한 열등감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세째; 외국어 구사능력입니다.

중학교때 열심히 공부하지 않고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한 나는 외국어와는 너무 거리가 멀었습니다.

회사생활을 하는동안 직급이 올라 갈수록 영어실력이 나에게는 큰 약점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회사에 근무하는 동안 여러차례 업무차 외국에 출장을 다녀올 기회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노후에 호주까지 와서 일하며 생활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일들이 사막에 강을 광야에 길을 내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통하여 이루어진 일임을 고백합니다.

 

결혼 후 부곡에서 살면서 하나님이 세 자녀를 주셨는데 큰딸 규연이가 초등학교를 들어간 다음에

수원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수원으로 이사 한 후에 명화용목사님이 은퇴후에 개쳑하신 서호교회(현재한빛교회)로 출석하였습니다.

서호교회에서 88년도에 장로피택이 되어 10년간 서호교회를 섬기다가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원하시는

부모님들과 같이 98년도에 부곡교회로 이명하여 오게 되었습니다.

부곡교회에서 장로로 시무하는 동안 특별히 기억나는 일들은

O 장로님들과 뜻을 같이하여서 김봉균담임목사님에게 재충전하실수 있도록 안식년을 드린일 

O 러시아 극동지역에 선교처소를 세우기위해 현지답사를 다녀온일 

O 청년부 네팔단기선교에 이동수장로 부부와 같이 함께 다녀온일

O 군포지역 아버지학교를 수료한 후 부곡교회에서 아버지학교를 개설한일  

O 일대일 양육과 양육자과정을 함께 하였던일 등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2000년도 부터 5년간이나 대구지역에 내려가 근무하면서 주일예배만 참석하며

장로로서 부족한 점이 많았습니다. 

어떤일에든지 내가 옳다고 생각하면 일의 옳고 그름에 치중하므로 은혜롭지 못하였거나 본의 아니게

믿음의 동역자들과 교우님들과의 관계에 불편을 초래하기도 하였습니다.  

 

부곡교회는 내가 육신적인 성장과 함께 영적으로 성숙한 신앙의 요람입니다.

또 나와 김영숙권사, 큰딸규연(지창진) 작은딸규애(최준영)가 결혼식을 올리고

새로운가정을 출발한 뜻깊은 곳입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되신 하나님이

나의 조부를 믿음의 아브라함 삼으시고 아버님을 이삭 삼으시고 나를 야곱삼으셨습니다. 

요셉으로 불리우는 아들 규덕이가 요셉같이 존귀한 사람이 되어 믿음의 대를 이어가기를

지금도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제 공식적으로 장로직을 은퇴 하였습니다. 

바라기는 후배 장로님들을 통하여 더욱 믿음의 큰 일을 이루어 가시고 새로 부임하신 이기선 담임목사님을

중심으로 새롭게 도약하는 부곡교회가 되기를 기도 드립니다.

기성세대가 믿음의 유산을 다음세대에 물려주고 다음세대의 젊은이들이 혼란한 시대속에서도

믿음으로 바르게 성장하여 부곡교회와 부곡지역과 나아가 국가의 미래비젼을 성취하고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O 두서없이 쓴 이야기를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O 이야기가 너무 길어 지어서 호주에서의 생활이야기는 다음기회에 하도록 하겠습니다. 

 

한희남장로1.jpg

 

 

   

sketchbook5, 스케치북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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